도동의 뒷골목을 누비던 어린 시절을 뒤로한 채, 약간은 터프해 보이는 듯한 사나이 중의 사나이로 신의와 의리를 중요시 여기는 겁 없는 사나이로서 치열한 동업계에서 자동제어장치를 연구, 제조하여 정부산하 기관에 납품을 하고있으며 풍향발전기 제조라는 더 높은 이상을 꿈으로 일구어 가면서 열심히 뛰고 있는 '우일전기' 대표 김유탁 향우의 일터를 가 보았습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Q: 어머님의 연세가 아흔이 넘은 걸로 알고있는데 건강은 어떠신지요?
A: 꼼짝도 못하시고 가만히 누워 계십니다. 아픈 곳은 없습니다만 올해 94세입니다. 형님 내외분이 참으로 큰 고생하고 있습니다.

 Q: 김사장이 현재 하고 있는 업종이 어떤 것인지 향우들이 궁금해 하는 것 같은데…… 자동제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가요?
A: 제가 하고있는 자동제어라는 것은 한전의 경우, 전력제어, 수자원공사의 경우, 수위제어, 이런 것들이 전부 자동제어에 해당됩니다. 예를 들어, 만약에 비가 많이 와서 댐의 물을 조절해야 할 경우에도 물이 많으면 자동으로 물을 빼버리는 등 이를 자동으로 제어하는 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한전과 같은 경우에는 전력의 과부화가 걸리면 이를 자동으로 차단이 되어야지요. 이게 전부 자동제어장치가 있는 덕분에 가능한 것이지요.

 Q: 회사설립은 언제 했습니까?
A: 90년에 설립을 했으니 꽤 오래되었습니다.

Q: 회사 프로필에 특허출원이 있는데 무엇인가요?
A: 요즘은 거의 사용하지않습니다 만은, 우일전기에서 개발을 했습니다. 샘플도 만들고 여러 곳에 판촉도 하곤 하였는데…. 예를 들어 종합병원에서 일회용주사를 많이 사용하는데 그 당시에만 해도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주사 바늘을 소독해서 다시 사용을 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병균이 감염이 되는 일이 있어서 이 기계는 쓰고 남은 주사 바늘만 녹여 버리는 것인데 실효성이 별로 없어서 그만 둬 버렸습니다. 개인 병원에서 몇 백만원 들여서 사지도 않고 하여 그만 두어버렸습니다.

 Q: 울릉도에서 언제 육지로 나왔습니까?
A: 고교를 졸업하고 빈둥거리다가 강연구씨가 제 매형이신데 마침 구룡포 어업조합 전무로 있었어요. 거기서 1년반 정도 노가다 비슷하게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이 것도 그만 두었습니다. 울릉도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아버님이 어떤 일이 있어도 울릉도에 들어와서는 아니 된다고 명령을 내렸어요. 울릉도에 있으면 술이나 먹고 싸움이나 할 것 같고 하니까 무조건 육지에 있으라는 것이었죠. 그 당시에는 집안의 재산도 다 정리하고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아버님의 배 사업도 중단하고 해서 울릉도에 가서 오징어나 잡을까 여러가지 고민을 하다가 그래서 군대를 갔습니다. 그래서 71년도에 입대를 했고 춘천 103부대에서 37개월 복무했습니다. 74년에 군에서 제대를 하고 바로 육지로 나왔어요
 
집무실에서의 김유탁 사장
Q: 제대하고 난 다음, 울릉도에는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A: 한 두어달 있다가 72년도 즈음일겁니다. 매형이 성남공장에 총무부장으로 근무를 할 때인데 아버지가 매형에게 전화를 해서 둘째 놈이 골치 아픈 놈이니까 데려가라고 한 것이지요. 그래서 매형덕분으로 매형집에서 같이 기숙하면서 한 3년간 신세를 지고 있었습니다.

Q: 그럼 삼영전자에 근무를 했군요?
A: 제가 아는 것이 없으니까 이 것 저것 닥치는 대로 잔 심부름도 하다가 마침 회사에서 희망자에 한해 야간대학을 회사경비로 보내주었어요. 그래서 실력이 있으면 한양대학교로 갈 수도 있었는데, 저는 FIC 기술전문대학(현재 경기전문기술대학)이라고 있었는데, 이 학교의 자동제어를 전공으로 입학을 했지요. 처음에는 생산부에서 일을 했는데, 전부 수동이니까 기계가 고장이 나면 수리도 해주고 하다가 FIC 졸업하고는 기술담당으로 정식근무를 했습니다.
 
Q: 자동제어학과를 어떻게 알고 입학을 했습니까?
A: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자동제어가 무언지 아무것도 모르고, 막연하게 앞으로 기계는 전부 자동화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더라구요.

Q: 직장을 다니면서 학교에 다녔으니까 공부가 제대로 되지도 않았겠군요?

A: 아닙니다. 참으로 열심히 다녔습니다. 하루도 안 빠지고 다녔습니다. 제가 공부를 잘 한 것도 아니고, 술이나 먹고 기껏해야 싸움질이나 하고 그랬으니 기초가 전혀 없어서 애를 먹었지요.

Q: 학교를 졸업하고는 보직이 달랐습니까?

A: 아니에요. 그대로 학교졸업을 인정해 주더라고요. 마침 그 당시부터 수동기계에서 반 자동으로 장치가 바뀌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기초와 함께 실기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카링기, 권치기 등의 기계를 전부 손으로 다 만들었습니다. 컨덴샤를 1억개 만들 때에 종업원이 3,000명이나 일했습니다. 지금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고급 소형이외에는 전부 중국으로 옮겨졌습니다 만은…

Q: 그래, 삼영전자에는 몇 년이나 있었습니까? 마지막 직책은?

A: 75년도에 삼영에 들어가서 89년도까지 근무를 했습니다. 약 13년간 근무를 했나봅니다. 마지막 직책이 생산기술부장으로 퇴사를 했습니다.
Q: 무슨 계획으로 퇴사를 했나요? 김사장께서는 기술에 관해서는 잘 모르실텐데요.
A: 예, 실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컨덴사 기계를 만들려고 회사를 나왔습니다. 삼영이 일본과 합작으로 처음 창업할 당시에는 전부 수동기계를 들여왔습니다.

Q: 그 당시 삼영전자는 기계를 몇 대나 가지고 있었습니까?
A: 그 당시에는 약 6~7000대 있었습니다. 차차 자동화가 되었습니다 만은 그 당시에는 전부 국산으로 만들었습니다. 퇴사를 하고 창업을 할 때 삼영전자와 약속을 한 것이 있었습니다. 컨덴사만은 삼영전자에만 납품하는 조건이었습니다.

Q: 그것은 매우 좋은 조건이 아니었던가요? 납품처가 확실한 것이니까.

 A: 그런셈이지요. 삼영에서는 인원관리도 어렵고 하니까 분업형태로 나온 것이지요. 기계파트에서 일하던 직원 30명이 같이 나왔는데 덩어리가 너무 커서 가공, 조립등으로 다시 나누었지요. 기계조립이나 전기조립이 끝나면 나는 자동제어만 하여 최종적으로 기계를 움직이도록 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즉, 자동제어장치를 이용한 마지막 공정은 내가 맡은 것이지요.

Q: 결국 삼영전자와 협력업체로 시작이 된 것이군요, 공장은 어디에서?

A: 광주에다가 조립공장을 600평을 샀습니다. 그때 참으로 잘 했습니다. 삼영에서 계속 일해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기계는 잘 못 될 일이 없었어요. 일본 파트너에서 설계도가 나오니까 제품생산은 완벽했어요. 92년도까지는 잘 돌아갔는데 그때가 되니까, 매월 30,40대를 만들고 나니까 더 이상 판매가 불가능해졌어요.자동화가 된 것입니다. 지금은 완전히 자동화되어 있습니다.
냉동칠러
Q: 소형 컨덴사는 주로 어디에 씁니까?
A:
삼성, 엘지의 휴대폰 만 해도 약 30개 정도 들어 있습니다. 93~94년도에는 투자를 해서 재미를 보았으나, 그 이후에는 일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1년 지나고 나니 아무런 일도 없으니까, 있던 것 다 처분해 버렸습니다. 직원도 약 40명이 있었는데 다른 곳에 돌파구를 찾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기계제작은 중단하고 삼영전자 납품하던 것과는 다르게 새로운 기계를 만들어 가지고 또 시작을 했지요. 초창기에는 조금 되는가 싶더니 IMF가 터진 이후에 일본에서도 좋은 기계가 들어오고 하니까, 이 또한 끝나고 말았지요. 한국에서 현재 만들어 보아도 대만에서 들여오는 기계 반 값도 안되니까 끝난 것이지요.

Q: 시련기가 온 셈이군요…
A: 건물 지어두었던 것도 매매가 아니 되어서 넘겨 버렸고, 주사기 비지니스도 해보고, 이래저래 되는 것이 없어서 삼영전자가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면서 헌 기계를 중국으로 가져가는데 이것들을 손 봐주고 녹슨 것 제거하고, 부품교체하고 이렇게 조금씩 하다가 보니까 조금씩 풀리더라구요. 그리고 한전, 수자원등에 일을 시작했지요. 남들도 다 하고있는 일인데 내가 영업을 해서 납품을 따는 것이었지요.

Q: 중국에 자주 가시는데 무슨 특별한 업무라도 갖고 계신지?

A: 삼영전자 중국 공장에서는 아직도 옛날의 컨덴사 기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계가 오래되어서 고장이 나면 내가 아니면 무슨 부품을 써야될지를 잘 모릅니다. 그 쪽에서는 기계를 없앨 수도 없고 내가 노하우를 가지고 있지요. 월간 5~6만불씩 중국 청도에 보내고 있지요. 다른 사람은 전혀 모릅니다. 부품소자가 자꾸 바뀌니까 대체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직원도 청도에 한명 있습니다. 중국에 월 두번 정도는 출장을 갑니다. 중국 삼영전자의 공장에 내가 관여를 하고있습니다.
 
또 하나의 냉동칠러
Q: 지금의 한전이나 여타에 납품하는 제어장치는 이곳에서 대부분 만듭니까?
 A: 대형 기계는 우리 기술자들이 직접 현장에 나가서 만듭니다. 직원 12명이 제조 및 영업을 하는 셈이지요.

Q: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주시지요.

A: 기계를 발주 받으면, 예를 들어서 하수 처리장이라고 하면, 기계제조 업체가 조립을 해두면 저희 회사가 동 기계의 박스를 만들어서 여러가지 배선을 넣고 자동제어장치를 붙여서 납품을 하는 것이지요.

Q: 경쟁업체가 많을 텐데요?
A: 한국자동제어공업협동조합원이 수백군데가 됩니다. 정부 일이 있으면 전부 다 덤빕니다. 이 조합원 수첩을 보십시오. 엄청 많습니다. 입찰이 시작되면 이리떼처럼 여기저기서 마구 덤비는 셈이지요..
 
장비테스트 작업
Q: 그렇다면 입찰이 매우 신경이 쓰이고 힘이 드는 일일텐데요? 매출 예상산정도 어렵고 일을 따 내기도 수월하지도 않을 것이고………이런 업종은 피를 말리는 사업이 아닙니까?
A: 그렇습니다. 입찰공고가 나서야 겨우 알게 됩니다. 그래도 오랫동안 하다가 보니까 이것은 올해에 대충 한 20억원은 할 것이다. 30억원은 될 것이다. 짐작이 되지요. 생산공장에 자동으로 물건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니까요. 정확히는 알 수가 없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랄까 꿈이 있다면?

A: 수산업 발전을 위한 자동화가 일차적인 꿈인데요. 가능하다면 산학연구팀과 공동으로 개발할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있다면 풍향발전기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것을 만들어 보려구요.

Q: 대단하십니다. 꼭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가족관계는?

A: 집사람 박창분, 도영(78년)은 현재 미국 Calspate Longbeach College 3학년으로서 생물학을 전공하고있고, 민영(81년도)은 국내에서 컴퓨터학과를 졸업하고 우리회사에서 일을 배우고 있습니다.
 
가족사진
참으로 대견하십니다.. 특수한 기계들을 제작하여 전문 업종으로 탄탄하게 기반을 굳혔으니 정말이지 보기가 좋습니다. 더욱 정진하시고 건강하십시오. 울릉도 후배들을 위해서 도움도 주시고 향우회발전을 위해 많은 조언도 해주십시오. 장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대 담]
일시및 장소: 2005년 5월 27일, 우일전기 사장실
면 담: 김 유 탁 (도동 50년, 우일전기 대표, 재경울릉향우회 부회장)
대 담: 홍상표 재경울릉향우회 회장
 
[회사소개]
회사명: 우일전기,
주 소: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5442-1 크란츠테크노 408호
전 화: 031-734-0890 팩스: 031-735-7487

[주요납품처]
삼영전자 공업, 수도사업소, 한국전력공사, 농업기반공사, 삼화전기, 태광이엔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