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에 산수 문제를 척척 알아 맞추곤 하던 어린 꼬마가 잡부에서부터 목수, 도로포장공사 하청업, 책 외판원, 자동차 외판원, 골동품장사, 약국관리부장 등 밑바닥 인생을 뼈저리게 체험하고 터득한 7전8기의 사나이 중의 사나이 전만술 당회 부회장님을 병술년 새해에 찾아뵈었습니다. 하남시에서 서울과 수도권은 물론 전국적으로 출고되는 건설 가설자재 일체를 제작, 임대, 매매업을 하고 있는 성진가설산업(주)의 현장을 찾아갔습니다. ㅡ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Q : 안녕 하십니까? 향우회의 일터탐방으로 전부회장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하고 계시는 사업이 특이하고 특히 젊은 향우들이 관심이 많이있기에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유익한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좋은 말씀도 많이 하여주시고요...
A: 회장님과 사무국장께서 이렇게 찾아 주셔서 반갑습니다.
Q: 전사장이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에 머리가 비상하여 산수 문제를 빠르게 불러주면 암산으로 정확하게 답변을 하곤하여 모두들 신기해하고, 특히 형들이나 어른들의 귀여움을 많이 받든 기억이 납니다. 지금 하시는 사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여 주실까요?
A: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가설자재 제작, 임대. 매매업입니다. 건설공사현장에서 본공사를 진행하기 위하여 임시로 설치해야하는 모든 자재를 가설자재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건설공사 시작부터 토목공사 터파기할 때와 흙막이 공사에 필요한 H빔, 흙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주는 흙막이 판 에서부터 콘크리트 슬라브 타설이나 외벽공사 등 구조물 건설을 위한 받침목(서포터),거푸집(폼)등 건설공사에 필요한 목재, 합판, 철재등 한 200가지 정도 되는 가설자재의 백화점이라 생각 하시면 됩니다.
강인한 의지의 달인답지않게 홍안의 미소를 띄우고있는 전만술사장
Q: 건설공사 가설자재의 종류가 그렇게나 많습니까? 건설공사에 필요한 가설자재를 대부분 취급 하고 계시는데 시장 규모는 대단히 크겠습니다. 전사장께서는 이 사업을 언제부터 하셨는지요?
A: 제가 이 사업을 1995년2월부터 일반사업자로 시작하여 1996년10월25일자로 법인으로 전환 설립하였으니 10여 년이 넘어가는 것 같군요.
Q: 10년 세월이면 사업기반을 탄탄하게 잘 다졌겠습니다.......
A: 특별히 기반이라고 할 것은 없고 사업 초기에 비하면 지금은 사업규모가 많이 크진 것이죠. 10년 전과 비교해 보면 자본금 삼백만원으로 시작하여 지금 우리 회사 자산이 상품과 장비, 차량을 포함하면 10억원 이상이되니 그동안 회사가 많이 커졌다고 봐야겠지요.
Q: 건설공사 가설자재를 제작, 임대, 매매하는 회사로는 규모가 크다고 생각 합니다. 회사 직원은 몇 명이나 됩니까?
A: 건설공사의 성수기인 봄부터 가을까지는 11~12명이 근무하고 비수기인 겨울철에는 5~6명 정도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수년 전만 해도 인원 변동이 별로 없었는데 2000년도 이후 근간에 와서는 인원 변동이 좀 많습니다. 2000년도 이전에는 동절기에도 민간공사는 진행하고 관공사만 기온이 많이 떨어지면 중지하였으나 지금은 민간공사도 품질관리가 강화 되어서 동절기 공사가 많이 줄었고 콘크리트 타설 공사도 10일에서 15일이 지나야 거푸집 해체를 할 수 있어 겨울에는 아무래도 콘크리트 타설 공사, 구조물 설치공사가 어려워 일이 많이 줄어드는 현상입니다.
가득히 들어찬 각종 철근파이프 자재들
Q: 연간 매출이 얼마나 됩니까?
A: 2004년도 매출이 13억원, 2005년도 매출이 15억 정도입니다. 2002년도에는 매출액이 20억 원 정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회사는 매출액도 중요지만 임대매출이 13억원이면 웬만한 일반 생산업체의 매출액 40억~50억원보다 많다고 보시면 됩니다. 임대 매출은 3가지로 구분합니다. 저희회사가 제일 주종으로 하고 있는 것은 평당 임대인데 예를 들어 공사규모에 따라 연건평 천평, 이천평에 평당 임대료가 얼마 하는 식으로 단가를 계산하는 것입니다. 작년에 사천평, 천오백평 짜리를 연이어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연10,000평을 임대 했을 때 평당 임대료 7만원이면 매출이 7억원이 되는 것이지요. 전체 임대매출에서 평당 임대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다음으로 마진율이 더 좋은 개당임대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매출 1억원 같으면 한7~8천만 원 남는 장사가 개당임대입니다. 20~30% 정도 마진 보는 것이 평당 임대이고, 제품판매는 이익률이 3%~5%정도 됩니다. 7~8%마진 보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경쟁이 심하기 때문이지요. 저희회사는 3가지를 다하고 있는데 2002년도까지는 개당 임대가 상당히 많았으나 요즈음에는 개당 임대가 줄면서 다시 평당 임대가 많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렇게 추세에 따라 매출액이 유지가 되어 기업을 운영 할 수 있는 것이지요.
Q: 가설자재 임대매출이 연 15억원이라면 규모가 대단합니다. 향후 전망은 어떠신지요?
A: 2002년까지는 연매출 15억원이면 순이익이 약 4억원~4억5천만원정도 되었고, 2000년에서 20003년까지 3년간 11~12억원쯤 흑자를 내었습니다만, 2004년부터 마진폭이 줄어들고 있기는 하나 지금까지 우수한 품질로 꾸준히 대응하여 왔으므로 앞으로도 계속 자재의 품질을 향상시켜 가설자재하면 성진가설(주) 자재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자재라는 명성을 지키고자 노력 하겠습니다, 제가 처음에 가설자재 제작 수리 전문 업체로 시작하여 판매업에서 IMF때 임대업으로 바뀌었습니다만 지금도 제작·임대·판매·매입·수리의 가설자재의 모든 분야를 하고 있으며 아마 전국의 가설자재 판매업체와 임대업체중에서 우리 회사의 제품이 품질면에 2번째 가라면 서러워 할 만큼 품질에서는 단연 앞서 있습니다. 그래서 임대료가 평당 만원~만오천원, 개당 10%~15%정도 타 업체보다 높아도 매출에는 영향이 없습니다. 그만큼 품질이 좋다는 것이지요. 2004년부터 건설업이 어려워지면서 매출이 줄고는 있어도 저희회사는 기성이 잘 나오고 확실한 거래처를 골라서 일을 하고 있으며 2004년부터 건설업이 어려워지고 작년도에는 더욱 어려워지면서 시장이 어려워지면 어려워지는 만큼 상황에 맞게 변화에 적응하고 있습니다. 시장의 큰 변화는 개당 임대에서 평당임대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 평당 임대에서도 임대료를 만원~2만원을 더 받고 부속 자재까지 포함을 하여 일하는 목수나 기술자들이 연장과 못, 절사만 가지고 현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여주고, 회사에서 공사현장까지 운반비도 포함하여 임대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니 오히려 경쟁력이 있습니다. 우리 회사는 2000년부터 이렇게 하여 왔으나 우리업종의 다른 회사들은 이제야 그렇게 변하고 있습니다만 늦은 것 이지요
건설현장 어디서나 사용되고 있는 콘크리트 타설 판
Q: 2006년부터 전망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A: 아주 불투명한 실정입니다. 왜냐하면 건설업 경기가 침체국면에 들어와 있고 동종 업계의 타 회사들이 도산의 위기를 맞고 있거나 많은 전문 건설사들이 부도위기에 있는 상황이라고 보아집니다 만은 저희회사는 2005년부터 오히려 나아지고 있는 셈입니다. 앞으로의 건설업의 경기는 정부의 특별한 대책이 없는 한 좋아지리라고는 보기가 어렵다고 생각 합니다.
Q: 자재의 품질 경쟁에 앞서가며 업계의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사업이 점점 번창 한다고 하니 기쁩니다. 그동안 사업을 하여 오시면서 어려웠든 고비도 꽤나 많이 있었을 터인데 한 말슴 해주시지요?
A: 1996년도에 법인을 설립한 이후 제품 판매대금으로 어음을 받는 거래가 많았는데 1997년에 1억7천만원의 부도를 맞았지요. 그리고 그런 상태가 회복되지 않은 시기에 I.M.F 사태가 닥쳐 대단히 어려웠지만 1998년도 보다 1999년 상반기가 더 힘들었어요. 그때 회사 자산이 1억원 정도였는데 부채는 2억5천만원이나 되였어요. 그것을 1999년 하반기부터 2002년 말 까지 부채를 다 정리하고 자산규모를 약8억 원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그때는 공사도 많았지만 운도 따랐다고 봅니다.
각종 가설자재를 제작하기위해 늘어선 원재료들
Q: IMF 당시에는 국가적으로 모두가 어려웠고 또 많은 기업들이 부도나고 문을 닫았지요. 그런 시기에 위기를 잘 이겨내시고 이렇게 회사를 단단하게 경영하시니 저도 기쁩니다. 고향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울릉도에서 어느 학교를 다녔던간요?
A: 저는 우산 초등학교 52회, 우산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부산에 있는 배정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Q: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하여 울릉도에서 부산으로 나왔군요.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무엇을 하셨나요?
A: 1968년에 섬에서 나와 고등학교를 다니고, 졸업한 후 육군에 입대하여 원주에 있는 1군사령부 의장대(54기)에서 군복무를 하였습니다.
Q: 당시에는 의장대 군기가 세다고 들었는데 경험으로는 어땠나요?
A: 참 힘들게 했지요.34개월 21일을 군대에서 보냈는데 한 사람도 면회를 오지 않았습니다. 누나(전순필)가 면회를 오겠다고 했었는데 국가에서 주는 밥 먹고 몸 건강하면 되지 면회는 필요 없다고 했으니 그때 제가 철이 좀 들었었나 봅니다. 면회 올 경비로 살림에 보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휴가 나와서도 일당 받고 막노동을 했었습니다.
Q: 참 대단하십니다. 휴가를 나와서까지 일을 하셨다니요? 제대한 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A: 건설 현장의 말단 잡부부터 시작해서 목수, 도로포장공사 하청업, 책 외판원, 자동차 외판원, 골동품장사, 약국관리부장 등 등, 여러 가지 일들을 했지요.
Q: 참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셨네요. 외국에도 나가서 생활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A: 가게를 정리한 돈으로 1989년에 호주로 투자 이민을 갔었는데 그 당시로는 꽤 큰돈을 가지고 갔었는데 2년 후에 빈손이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귀국 후에 택시기사로 한 6개월 일하다가 골동품 판매 유통업을 2-3년 하고나서 현재 하고 있는 건설가설 자재 업을 시작했습니다.
Q: 요즘은 어떻습니까? 고향엔 자주 가시는지요?
A: 지난해 8월에 친구4명이 부부동반으로 고향을 찾아가서 밤새워 이야기하고 놀았습니다.
어디든 함께 가야 할 영원한 아내, 이무순 여사와 함께
Q: 선대에서 울릉도에 정착하시게 된 특별한 배경이라도 있습니까?
A: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울릉도 개척시대부터 살아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선친형제분들이 5형제분으로 백부님은 전주봉씨(전국술 전 산악회장 부친으로 남면 면장을 지내셨음).숙부로는 전석봉씨(제5대 국회의원을 지내셨음), 술도가를 경영하시던 숙부께서만 생존 해 계십니다.
Q: 살아오시면서 인생의 좌우명이랄까 회사를 이끌어 가는데 철칙이 있다면 한 말씀 해 주시지요.
A: 좌우명이라기보다 일단 부지런해야 된다고 봅니다. 직원들도 게으른 직원들을 제일 싫어합니다. 가족들도 부지런해야 저하고 생활패턴을 맞출 수가 있습니다. 직원들도 가족들도 저의 이런 점 때문에 힘든 점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이제부터 한 템포 늦춰서 생활하려고 생각은 하고 있는데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전사장을 보좌하며 업무를 보고있는 이무순여사
Q: 매사에 부지런해야 된다는 말씀이군요.
A: 네, 서양격언에 ‘빌어먹어도 부지런해야한다‘ 는 말이 있잖습니까.
Q: 울릉도 출신이라서 특히 사업을 하신다거나 살아오면서 힘이 드신 부분은 없었는지요?
A: 분명히 있었지요. 군대에서 특히 울릉도 출신이라고 업신여김을 당한 적이 있었지요.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울릉도 출신이라고 당당하게 밝히질 못하였는데 이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당당하게 밝히게 되었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습니다.
Q: 울릉도 출신임을 당당하게 밝히시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신다니 뿌듯합니다. 선후배들에게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한 말씀 해 주시지요.
A: 울릉인 이라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시고 어디서든 당당하게 말씀하시라고 부탁드리고 싶군요. 그리고 선배님들께서 후배들을 나이 한두 살 정도를 뛰어 넘어 다정하게 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Q: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시나요?
A: 처는 이무순 (진주 출신)으로 76년에 부산에서 만나 연애를 하다가 1977년에 결혼하여 딸을 셋 두었습니다. 큰딸 경숙(78년생)은 대학졸업 후 신부수업중이며 금년 가을 쯤 결혼 할 예정이며 둘째 은경(79년생)이도 대학 졸업 후 취업준비중이고, 셋째 가영(82년생)이는 대학 재학중입니다.
막내딸도 함께 하였으면 좋았을 어느날의 단란한 가족사진
Q: 시작은 어렵게 하였지만 성공하셨고 참으로 7전 8기를 한 셈이군요.
A: 성공이라기보다는 그동안 열심히는 했지요.
Q: 바쁘신 중에도 이렇게 시간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일 시: 2006년1월11일, 성진가설 사무실 전만술(도동 52): 성진가설산업(주) 대표이사 사장, 당회 부회장 성진가설산업(주):
설립일자: 1995년 2월 본사 및 공장: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331-1
대표전화: (031)795-5045, 5094~5 FAX: (031)795-5046 핸드폰: 011-240-8574 <
대 담 > 홍상표: 재경울릉향우회 회장 강영호: 재경울릉향우회 사무국장